Search Results fo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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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04 조제
  2. 2015.10.10 머니볼
  3. 2015.10.10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4. 2015.08.30 마돈나
  5. 2015.08.30 차이나타운
  6. 2015.06.28 내가 사는 피부
  7. 2015.06.28 타임 투 킬
  8. 2015.06.28 세븐 데이즈
  9. 2015.03.25 위플래쉬
  10. 2015.01.02 퓨리

조제

PUBLISHED 2020. 4. 4. 08:48
POSTED IN 영화

누구나 자신만의 조제가 있다.

 

 

머니볼

PUBLISHED 2015. 10. 10. 18:27
POSTED IN 영화

 

머니볼

2011

베넷 밀러

 

 

 

 

 

 

 

 

 

소설은 읽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다.

제리 맥과이어 이후,

이런 류의 스포츠 관련 영화는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첫경험을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거다!)

 

단장으로서 브래드 피트는 자신의 역할을 200% 해내고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는 '차별화'를 선택한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뉴욕 양키즈가 아님을, 빌리 빈은 '깨닫고' 있다.

'야구'가 가진 스포츠의 속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신념대로 행동하며, 

행위에 따른 결과에 대해 승복한다.

 

그라운드 위에서의 권력은 야구감독이 절대적이라면,

라커룸 뒤에서의 권력은 구단주에게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비즈니스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그의 화법과 애티튜드는 한번쯤 적용할 만한,아니 반드시 장착해야 할 옵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요한 인재라면 반드시 찾아내어 중용하는 모습 또한관리자로서, 사업을 하는 이로서는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물론, 그런 안목을 기르는 것부터가 먼저인 것은 말해 무엇하랴.

팔짱 끼고 차분히 보다 보면

러닝타임은 어느새 엔딩 크레딧으로 향하고 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PUBLISHED 2015. 10. 10. 18:05
POSTED IN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5

안국진















'나만 잘하면 돼.'


그래 너만 잘하면 돼.

그러면 필패必敗야.

여지껏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지금의 패러다임에서는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다람쥐 챗바퀴 돌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희한한 구조.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고

'나'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더 당하고, 깨우치고, 다시 당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속삭임.


'그래,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돼.'


이 속삭임에 중독되고, 도취되면

지금의 어버이연합이, 1번만 찍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까지


"지금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어. 끈기가 없어. 우리 때는 말야..."


하는, 이 소리를 자신이 곧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비밀.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본 이정현의 연기력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해맑은 그녀의 미소가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전혀 안 비밀.



마돈나

PUBLISHED 2015. 8. 30. 21:37
POSTED IN 영화

마돈나

2015

신수원














제목의 역설.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 주변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사람들 주변에는

그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자신의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삶마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루하루를 묵묵히 감내하며 사는 것 외에는, 달리 

특별히, 더 주목받기 위해 사는 법을 모르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한 번쯤, 한 번 정도는 돌아보자.


돈으로, 사회적 지위로, 물리적 힘으로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자본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기에.

마돈나가 사는 세상이 스크린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이기에.





차이나타운

PUBLISHED 2015. 8. 30. 14:11
POSTED IN 영화


차이나타운

2015

한준희















잡탕밥이 왔는데 죽순만 있고 해물은 빠진 느낌.

이 얼마나 허전한가.

이 얼마나 황당한가.


액션은 지루하고

대사는 비루하다.


제일 잘 하는 것 하나만 해라.

자장면 하나만 잘 해도 그 중국집은 욕 안 먹는다.




내가 사는 피부

PUBLISHED 2015. 6. 28. 14:02
POSTED IN 영화


내가 사는 피부

페드로 알모도바르

2011















복수의 향연.


복수라는 단어가 주는 심상은

통쾌, 또는 허무.


통쾌한 복수는,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된다.

피해의 대상이 인간이기보다는 가해 '행위' 그 자체이다.

복수를 통해 피해자는 회복하며,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


허무한 복수는,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하면서 스스로 파멸한다.

자신이 분열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학적이고, 비윤리적인 폭력이 주는 중독성에 이성이 마비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러한 복수에는 폭력이 남긴 카타르시스 뒤에 따라오는 허무함이

필연적이다.

폭력이라는 행위 자체가 지닌 속성이 그렇다.

파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귀속된다. 모든 파괴가 그렇다.


복수의 주체가 피해자의 아버지, 그리고 의사라는 점이 <세븐 데이즈>와 유사하다.

<테이큰>처럼 만능 아빠를 두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복수도 먼 나라 이야기가 되는 세상.

자력구제가 판칠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 법의 심판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해주지 못하는 양형제도의 불합리함.

그렇기 때문에 이런 류의 영화가 등장한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복수'는 구약시대부터, 인류가 존재한 시점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했다.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일 뿐, 

정의로운 사회가 온다면 이런 영화가 사라질까? 아니다.


피해자의 복수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복수의 대가 또한 피해자의 몫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티에리 종케 <독거미> 원작


타임 투 킬

PUBLISHED 2015. 6. 28. 13:13
POSTED IN 영화


타임 투 킬

조엘 슈마허

1996















아동 성폭행 시리즈인가.

최근 포스팅이 공교롭게 겹친다.


개봉 당시 초반 법정 총질 장면이 이슈가 되었던,

그 장면이 마케팅으로 이용되어 각인된 영화.


<세븐 데이즈>와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비슷한 것은 자력구제이지만,

다른 점은 법정 스릴러라는 이야기 요소가 <타임 투 킬>에 가미된다.

나아가 흑백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문제까지 보여준다.


이 영화의 백미는 초반 아버지의 분노가 폭발한 법정 장면이 아니다.

변호인의 마지막 변론, 강한 울림을 준다.


존 그리샴 원작.



세븐 데이즈

PUBLISHED 2015. 6. 28. 12:47
POSTED IN 영화


세븐 데이즈

대니얼 그로우

2010















이런 류의 영화는 둘로 나뉜다.

보고 나서 통쾌하거나

보고 나서 찜찜하거나.


감정의 선이 갈리는 분기점은 

평소 아동 성폭행에 대한 문제의식의 유무이다.

'아동'이라고 한정할 필요는 없다.

(약자에 대한) 폭력에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면 충분하다.


자력구제에 대한 대리만족.

법의 시스템을 악용하는 가해자의 인면수심에 대해

법적 심판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을 피해자 스스로가 해결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보면서 통쾌하거나 또는 불편하거나.


그 감정선은 '선택'이 아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감독의 '연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잔인한 장면의 연출은 이러한 장르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보는이에 따라서 그 정도는 다르게 판단된다.

그 다른 정도가 감정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연출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미미한 정도라는 점이다.


피해자가 집행자가 되어야만 하는 현실.

또 다른 가해자로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

피해자가 괴물로 변하는 것을 방치한 사회 시스템에 고민해 보는 정도로

이런 류의 영화에서 의미를 찾으면 그만이다.


피해자를 나무라지마라.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다.






위플래쉬

PUBLISHED 2015. 3. 25. 10:19
POSTED IN 영화


위플래쉬

다미엔 차젤레

2015















러닝타임 내내 온몸이 경직된 채로

스크린에 몰입되어서 본 영화가 얼마만인지.


영화가 끝나고 몸과 마음이 충만했던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건반이나 브라스가 주제였다면 이 정도로 흥미로웠을까.

드럼이라는 두드림이 주는 울림이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엔딩크레딧까지 볼 수 있었다.


네이먼과 플랫처 간의 팽팽한 긴장감 역시 이 영화의 백미.

반전에 반전, 뒷통수를 치고 등에 칼을 꽂는 배신의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최고의 수확은

그렇지.


그럴 수밖에.



퓨리

PUBLISHED 2015. 1. 2. 19:24
POSTED IN 영화

퓨리

데이비드 에이어

2014















영화의 시작과 끝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 두 가지.


티거 탱크

그리고

브래드 피트


연합군 탱크를 묵사발 낸 티거의 위력.


그러나 티거의 악명을 잠재우는

브래드 피트의 외모.


그가 상의를 탈의한 장면은

비루한 육체에게 숙연함을 선사했다.

'저게 남자지..'

 

그가 소대원의 도발에 내뱉은 음식물에서

무늬만 마초에게 깨달음을 선사했다.

'저게 마초지..'


하지만 그 장면, 어디서 봤더라?

'맞아, 머니볼'


영화 처음 부분에서 역광으로 잡힌 퓨리가 기동하는 부분은

'메탈슬러그!'


도대체 영화를 보면서 뭔 잔상이 그리 많이 남던지.

하지만 기억나는 대사도 있었어.


Ideals are peaceful

History is violent.



덱 자켓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던 영화.